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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
고원방고(羔園訪古)

탐라순력도 고원방고(羔園訪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조선 숙종때인 1702년에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에 부임하여 제주도내 각 고을을 순력하면서 당시 거행했던 여러 행사장면과 자연, 역사, 산물, 풍속 등을 제주목 소속 화공(畵工) 김남길(金南吉)로 하여금 40폭의 채색그림으로 그리게 한 화첩이다.

1702년(숙종 28년) 11월 초 6일 탐승(探勝). 고둔과원(羔屯果園)에서 왕자구지(王子舊地)를 탐방하는 그림. 고둔과원은 대정현성에서 동쪽으로 55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현 용흥동 속칭 염돈마을 운랑천(雲浪泉) 부근의 염돈과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에 의하면, 이곳은 고득종의 별장터로도 유명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이 과원 좌측에 [왕자구지(王子舊地)]라 되어 있고, 그 곳에서 기녀들이 거문고를 연주하는 가운데, 풍악을 즐기고 있다.

과원의 방풍림으로 대나무가 심어져 있고, 과원의 밖에는 참나무 밭과 매화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운랑천(雲浪泉)으로 추정되는 물[水]과 인근에는 그 물을 이용한 논[畓]이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탐라순력도
감귤봉진(柑橘封進)

탐라순력도 감귤봉진(柑橘封進)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조선 숙종때인 1702년에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에 부임하여 제주도내 각 고을을 순력하면서 당시 거행했던 여러 행사장면과 자연, 역사, 산물, 풍속 등을 제주목 소속 화공(畵工) 김남길(金南吉)로 하여금 40폭의 채색그림으로 그리게 한 화첩이다.

여러 종류의 감귤과 한약재로 사용되는 귤껍질을 봉진하는 그림이다.
귤의 진상은 9월부터 시작하여 매 10일 간격으로 1운(運)에서 20운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그림이 천신용(薦新用:제사 등에 쓰이는 햇과일) 2차 진상 21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위 원칙이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귤의 진상을 마련하기 위해 1526년(중종 21)에 이수동(李壽童) 목사는 별방.수산. 서귀.동해.명월방호소에 과원(果園)을 설치하고, 그 곳을 수비하는 군인으로 하여금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후 과원은 제주목에 22개, 정의현에 7개, 대정현에 6개로 증설되었으며, 숙종시에는 모두 42곳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 과원에서 생산되는 양으로써, 봉진의 수량을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관(官)에서는 일반 민가(民家)에 있는 귤나무를 일일이 조사하여 관리하였다.

일반 백성들에게는 귤나무 8주(株)를 기준으로 하여 1년의 역(役)을 면제하여 주는 방안이 마련되기도 했지만, 귤이 열매를 맺으면 관가(官家)에서 일일이 그 맺은 바를 헤아리고 장부에 기록하였다가 그 수를 귤나무 소유자에게 모두 부과시켰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파생되었다.
즉, 수확시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남아 있어 그 간에 해충 또는 바람 등에 의해 떨어진 귤마져 그 소유자에게 전가시켰던 것이다. 이에 민가에서는 오히려 귤나무가 고통을 주는 나무라 하여 도리어 귤나무에 더운 물을 끼?怒?고사(枯死)시키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망경루(望京樓) 앞 뜰에서 귤을 상자에 넣어 봉(封)하는 과정 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는데, 당시 봉진한 수량은 당금귤(唐金橘) 678개, 감자(柑子) 25,842개, 금귤(金橘) 900개, 유감(乳柑) 2,644개, 동정귤(洞庭橘) 2,804개, 산귤(山橘) 828개, 청귤(靑橘) 876개, 유자(柚子) 1,460개, 당유자(唐柚子) 4,010개, 치자(梔子) 112근, 진피(陳皮) 48근, 청피(靑皮) 30근 등이다.

한편, 제주의 귤이 조정에 도착하면 임금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그 일부를 나누어 주면서 과거가 시행되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황감제(黃監制)라는 과거시험이다.

탐라순력도
귤림풍악(橘林風樂)

탐라순력도 귤림풍악(橘林風樂)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조선 숙종때인 1702년에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에 부임하여 제주도내 각 고을을 순력하면서 당시 거행했던 여러 행사장면과 자연, 역사, 산물, 풍속 등을 제주목 소속 화공(畵工) 김남길(金南吉)로 하여금 40폭의 채색그림으로 그리게 한 화첩이다.

망경루 후원(後園) 귤림(橘林)에서의 풍악도(風樂圖). 당시 제주읍성안에는 동.서.남.북.중과원(中果園) 5개와 별과원(別果園) 등 6개의 과원이 있었는데, 이 과원은 북과원(北果園)으로 생각된다. 여기에는 본래 여말선초에 상진무청(上鎭撫廳).부진무청(副鎭撫廳)이 있었던 곳이다.

과원 가운데, 풍악을 즐기는 모습이 상세히 보이며, 과원 둘레에 대나무가 방풍림(防風林)으로 심어져 있다. 1702년 삼읍 귤의 총결실수(摠結實數)를 부기 하였는데, 그 내용은 당금귤 1,050개, 유자 48,947개, 금귤 10,831개, 유감 4,785개, 동정귤 3,364개, 산귤 188,455개, 청귤 70,438개, 유자 22,041개, 당유자 9,533개, 등자귤(橙子橘) 4,369개, 우금귤(右金橘) 1,021개, 치자 17,900개, 지각(枳殼) 16,034개, 지실(枳實) 2,225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