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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공립미술관 공동기획전 [서귀포에 바람]

· 작성자 : 기당미술관      ·작성일 : 2020-11-17 09:15:39      ·조회수 : 3,573     

          

 

서귀포시 공립미술관 공동기획전 [서귀포에 바람]

기당미술관 : 생활의 바람 - 지금, 여기, 서귀포에 살고 있습니다

 

기당미술관 기획전시실

2020. 11. 17(화) ~ 2021. 2. 28(일)

 

영화 디센던트(The Decendent)의 주인공은 하와이 호놀룰루에 살고 있다. 미국 본토의 친구들은 지상낙원에 살고있는 그를 부러워하며 일상이 마치 휴가를 즐기는 것과 같을 거라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따지고 싶다. 미친 거 아냐? 그의 아내는 사고로 수십일 째 혼수상태에 빠져있으며 사춘기에 접어든 딸들은 매일매일이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다. 물려받은 재산들은 친척들이 흥청망청 써버렸고, 마지막 남은 땅은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갑자기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그 속의 삶과 일상들이 여기, 서귀포와 너무나도 닮아있어서이다. 나 또한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흔히 말하는 육지 사람들) 서귀포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고 감사한 일인지에 대해 ‘강요’당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밥 벌어먹고 사는 거, 어디나 다 똑같아요.

 

하물며 여기 서귀포에 사는 예술가들의 삶과 일상은 어떠한가. 그들에게도 서귀포라는 곳은 굉장히 매력적인 공간임이 분명하다.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형태로 서귀포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으며, 같이 전시를 진행했던 도외의 작가들 중에서도 서귀포에서 작업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또한 나는 대답했다. 일단 6개월 정도만이라도 살아보고, 판단하세요. 거듭 반복되는 얘기지만 당연하게도, 서귀포에서 작업을 해보는 것과 이 좁은 지역사회에서 예술가로서 삶을 영위해나간다는 것은 매우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체험(體驗)이 일상(日常)이 되는 순간 현실의 수많은 문제들은 마치 군생동물처럼 앞다투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당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는 4명의 작가들은 여기, 서귀포라는 대지 위에 끈질기게 발을 붙이고 몸을 세워가며 살아간다. 이들이 서귀포에서 예술가로서 활동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동력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관성에 이끌린 것일 수도 있고, 벗어나고자 하였고 벗어난 듯 했으나 알 수 없는 본능에 회귀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여기 서귀포라는 공간이 작업환경에 중차대한 메리트를 제공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정말 이유 없이 서귀포가 너무나 좋아서일 수도. 이번 <서귀포에 바람> 기당미술관 전시 <생활의 바람 – 지금, 여기, 서귀포에 살고 있습니다>는 서귀포에서의 삶과 일상을 주제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초대하여 그들이 지금, 여기, 서귀포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 묻고자 한다.

 

안병근 작가는 서울에서 작가와 미술교사로 활동하였으나, 십여 년 전 이러저러한 계기로 서귀포에 자리를 잡은 후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좁은 동네라 가끔 마주치게 되는데 백발의 선한 눈망울을 가진 작가의 생김새는 멀리서도 눈에 띈다.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거대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이다. 그 역시 언급하듯 서귀포 전체를 굽어보는 한라산은 때로는 억압적이기도 하지만 한없이 포근하기도 하고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며 우리 삶의 기저를 형성한다. 그 안에서 작가도 살아가고, 이름 모를 소녀와 어느덧 숙녀가 된 그 소녀, 당돌한 바다소년들, 바닷가에 가마우지 가족들도 함께 살아간다. 계절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들꽃이 만개하는 봄이나 귤나무 위에 소복이 눈이 쌓이는 겨울과 같이 행복한 시절도 있지만, 때론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태풍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작가는 보목리의 작은 작업실에서 밤새 온몸으로 비바람을 견뎌내곤 했다. 살아있는 생물과 같이 꿈틀대는 생태계 안에서 우리는 가끔, 저항하듯 소리도 질러보지만 이내 곧 그 생물을 이루고 있는 세포처럼, 거대하도고 신비로운 체계의 일부로서 삶과 일상을 꾸려간다. 그리고 작가는 그 순환과 공존의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좌) 2019, 캔버스에 유채, 122X244cm / (중) 2019. 태풍,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00X83cm / (우) 그리움, 2019, 캔버스에 유채, 49X49cm

 

양형석 작가는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젊은 도예가이다. 도예라는 장르는 사실 무척이나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이질적이기도 하다. 일단 입체적 조형예술이라는 특징, 예술과 실용(實用)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에 구워내는 소성(燒成)이라는 독특한 과정을 동반한다. 작가는 도예에서 흙이라는 소재가 가지는 성형의 입체성과 자유로움, 불이라는 요소가 가지는 불확실성이라는 양면적 성질에 주목한다. 오래된 팽나무에 생긴 커다란 옹이의 질감, 중산간의 고사목들, 백록담에 핀 상고대에서 영감을 받은 조형들에(그것들은 마치 막스 에른스트의 프로타쥬나 콜라주를 이용한 초현실주의 작품을 떠올리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기물에 연(그을음)을 먹여 구워내는 라쿠소성을 통해 우연적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인 효과들을 덧입힌다. 작가는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에 이면(裏面) 혹은 이면의 창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군집한 이면의 창들은 마치 어두운 밤 마천루의 창문들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구름에 가려진 제주 섬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외부에서 그 벌려진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의 비밀스러운 내면을 살짝 보여주는 것인지 모호해진다. 정면과 이면은 이분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면서도 동시에 혼재되어있다. 내부와 외부, 수렴과 발산, 정형과 비정형 나아가 세속과 자연, 은둔과 공생은 우리들의 삶처럼 그 경계를 허물어뜨리듯이 넘실댄다.

 

          

(좌)이면의 창, 2020, 조합토에 라쿠소성, 28.8x28.2cm / (중)검은 창, 2020, 조합토에 라쿠소성, 27.2X25.6cm / (우)공생의 섬, 2020, 조합토에 라쿠소성, 가변크기

 

오승용 작가는 매사 침착하고 섬세하고 성격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동시에 관능적이고 활기차다. 사실은 작가 내면에 그러함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가지지 못했거나 놓쳐왔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동경일까. 한국화적인 필치와 구도로 그려진 서귀포의 대표적인 명소의 배경 안에서는 지극히 현대적인 삶은 영위하는 사람들의 소우주가 펼쳐진다. 새섬에서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 정방폭포에서 멱을 감는 관능적인 여성들, 외돌개에서 등산과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 다른 부분들을 떠나서 그가 표현하고 있는‘동시대’서귀포 사람들의 삶이라는 주제는 매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체가 모호한 이상향으로서만 표현되는 낙원과 신화의 섬, 혹은 시간성이 보류된 섬사람들의 역사와 삶을 다루는 수많은 작품들에서 벗어나 우리가 2020년 이 시점에 보고 느끼고 있으며, 끊임없이 변화가 거듭되는 이곳의‘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의 경험과 기억 속에서 끄집어올린 장면들은 화폭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으로 승화된다. 비록 그것을 작가 본인은 므두셀라 증후군(과거를 의식적으로 미화하여 재해석하는 현상)이라는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질병으로서의 증후군이 아닌 우리의 예술과 인생을 어찌 되었든 지속시켜주는 일종의 축복일 수도 있다.

 

                      

(좌) 연인(戀人), 2020, 한지에 아크릴, 90.9X72.7cm / (중) Golfer, 2020, 한지에 아크릴, 116.8X80.3cm / (우) 외돌개, 2020, 한지에 아크릴, 145.5X112.1cm

 

변금윤 작가는 매우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그녀가 작업해온 주제는 소통과 관계, 생명과 죽음, 여성, 생태나 신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지만, 이들을 작품으로 구현하는데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은 움직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상이 존재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미세한 떨림들이다.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상들에서는 정적인 순간이나, 심지어 놓여있는 사물들에서도 미세한 떨림과 움직임들이 감지된다. 시간과 속도를 부여해줌으로써 대상들은 이를 양분 삼아 자신들의 존재를 부단하게 발산하고 표출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과정들을‘기척’과 ‘재생’이라는 키워드로 재해석했다. 서귀포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일상들도 현미경의 배율을 높여가듯 미시적으로 끊임없이 분해해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장소의 특정성이 사라질 것이며, 또 어느 순간에는 축적되어온 역사와 시간의 특정성도 사라질 것이다. 마지막의 순간에는 말 그대로의 물리적인 움직임과 떨림만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적분하듯 이 과정을 역으로 돌려본다면 미세한 레이어와 프레임들이 수없이 쌓여가며 인지할 수 없는 사이에 지금, 여기 서귀포에서의 생(生)들이 복원될 것이다.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짧지만 치열한 순간(瞬間)들은 마침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시간(時間)이 된다.

 

           

시간의 바람, 시간 위의 정물, 허공에 멈춘 시간(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 부드러운 시간(철제상자 설치), 2020, 전시설치

             

(좌)허공에 멈춘 시간(스틸 컷), 2020,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 / (우)부드러운 시간, 2020, 철제상자 설치, 60X40X20cmX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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