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후퇴 때 원산을 떠난 이중섭과 그 가족은 잠시 부산에 머문 후 제주 서귀포에 도착한다. 제주 서귀포는 이중섭에게 대단히 주요한 시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길 떠나는 가족>이라는 작품 속에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는 이중섭 가족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소달구지 위에 여인과 두 아이가 꽃을 뿌리고 비둘기를 날리며 앞에서 소를 모는 남정네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 하늘에는 한 가닥 구름이 서기처럼 그려져 있다. 소를 모는 남정네는 작가 자신이고 소달구지 위에 있는 여인과 두 아이는 부인과 두 아들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가족이라는 모티브는 이중섭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 그렇긴 하지만 이처럼 가족의 흥겨운 한 순간을 포착한 작품은 <길 떠나는 가족> 외에 따로 없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잠깐 어디를 향해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은 거처를 옮기는 이주를 나타낸다. 정든 고향을 버리고 가는 슬픈 이주가 태반이지만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은 즐거운 소풍놀이라도 가듯 흥에 겨운 이주로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향해가고 있는 곳이 다름 아닌 지상의 낙원으로서의 따뜻한 남쪽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주 서귀포는 이중섭에게 있어 지상의 유토피아로서의 공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