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 위의 집, 서귀포 건축문화기행 4 - 10-1: 이타미 준

· 작성자 : 관광진흥과      ·작성일 : 2020-09-09 09:41:38      ·조회수 : 140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작가를 아는 것이고, 작가를 안다면 작품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제주에는 이타미준의 작품이 몇 있고, 나 또한 그에 대해 몇 차례 썼다. 그땐 이타미준을 얼마나 알았을까? ‘안다’는 말의 무게를 새상 깨닫는 여행이었다.

 

 

이타미준의 제주  

재일한국인 건축가 유동룡, 그리움의 흔적들

 

 

글, 사진 : 여행칼럼니스트 송세진

 

 

방주교회

 

 

발견의 반복, 방주교회

 

방주교회 본당

 

언젠가 칼럼에 방주교회를 소개했는데 잡지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타미준 관련 건축사무소에서 항의가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심각한 손해가 있으니 당장 내용을 삭제하라는 통보였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었다. 분명 현장에서 취재를 통해 얻은 정보였는데 마치 내가 방구석에 앉아 거짓말을 지어낸 게으른 작가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 현장의 정보가 꼭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은 사진을 찍으러 방주교회에 갔는데 누군가 지켜 서서 촬영을 막아섰다. 또 언젠가는 교회 내분 소식이 들렸다. 물론 건축물과는 무관한, 그 사람들의 문제였지만 내 마음 속에 이타미준의 작품은 제주에서 일을 하기 위한 ‘필요악’ 같은 존재로 전락해 가고 있었다.

‘또 이타미준이야?’ 영화 [이타미준의 바다] 상영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시큰둥하게 영화를 보고 다시 한번 그의 작품을 둘러보았다. 그 작품에 대해 여러 번 썼지만 그를 알려는 노력은 없었다는 사실, 공감하려는 노력 또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경험이나 건축물을 둘러싼 사정들을 떼어내고 저 교회를, 저 건축물의 신통함을 찾아보리라, 마음을 먹고 다시 천천히 안팎을 둘러보았다.

 

방주교회 하늘로 난 창

 

방주교회는 갈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다. 맑은 날 파란 하늘을 담은 지붕과 창, 안개 낀 날은 물고기 비늘 같았던 지붕, 해진 후 본당에 불이 켜 졌을 때는 커다란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고, 본당의 창을 통해 쪼개지는 빛은 하나님의 은총 같다. 지붕에 마름모로 뚫린 작은 창은 빛을 모으고 굴뚝 같은 빛의 통로는 이를 여러 각도로 반사하며 내부로 끌어들인다. 성서에는 대홍수가 난 후 방주 속 노아와 가족들이 마른 땅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비둘기를 날렸다고 하는데 그 창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작가는 이야기와 철학과 바람을 담았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보고자 하는 이에게만 조금씩 내비친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알지 못하면 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 난 ‘마음만큼 보인다’ 라고 말하고 싶다. 예술 작품은 지식의 깊이로 감동하는 것이 아니다. ‘특징 10개 찾기’ 같은 미션 여행이 아니다. 공감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이타미준을 만날 것이다. 난 10년 만에 그를 만난 것 같다.    

                               

 

꿈의 실현, 포도호텔

 

포도호텔 전면 모습

 

포도호텔은 꿈의 실현이 아닐까? 일본에도 한국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던 재일교포, 일본에 귀화하지 않았지만 작품활동을 위해 예명을 사용했던 유동룡 건축가는 모국을 그리워했다. 그리움은 꿈이고, 꿈의 실현은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 있어 작가에게 기회는 복이다. 포도호텔은 이타미준 말기의 작품이다. 이를 찬찬히 살펴보면 작가가 이를 통해 평생의 속풀이를 한 느낌이 든다.

포도호텔을 얼핏 보면 존재감이 없다. 포도 줄기를 닮아서 ‘포도호텔’, 이름은 귀여울 정도이고, 번쩍이는 마감재 하나 없는 단층짜리 호텔이다. 지형을 거스르지 않은, 옛 초가 마을을 닮았다. 고층 호텔을 짓는 이유는 사용자에게는 전망 때문이고, 이에 따른 많은 객실은 호텔측에 이윤을 준다. 그런데 포도호텔에는 높은 전망도 많은 객실도 없다. 그렇다면 건물 자체를 즐기라고, 스스로가 풍경이 된 건 아닐까? 그도 아니다. 입구 전면은 풀숲에 살짝 열린 콘크리트 문처럼 보인다. 아주 단순하다. 틈을 통해 복도의 깊이감이 슬쩍 보이지만 결코 으리으리 하거나 압도하는 느낌도 없다. 사람의 눈 높이에서는 이 건축물 자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존재감은커녕 자연 속에 숨기려고 애를 쓴 느낌이다.  

 

백남준 작품

호텔은 닫힘과 열림이 반복된다. 복도 중간중간은 밖을 향해 열려 있다 유리창 너머, 깊게 뚫린 창 밖으로 오름의 능선이 아름답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스티커는 혹 투숙객들이 머리를 부딪힐 까 붙여 놓은 일종의 경고문이다. ‘유리’, ‘길없음’, ‘warning!’ 같은 프린트물이 아니다. 천연기념물 뜸부기가 그려진 이 귀여운 그림은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의 작품이다. 경고 스티커인 줄 알았던 작은 그림까지 작품이니 나머지 디테일들은 안 봐도 알 것 같다.

 

포도호텔 캐스케이드

 

감물 들인 천으로 마감한 벽, 하나씩 따로 가마에 구운 사인물들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창호는 두가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위쪽은 한국전통, 아래쪽은 일본스타일이다. 이것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던 자신을 표현한다.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은 얕은 폭포를 포함하는 캐스케이드이다. 호텔 내부에 직접 제주의 빛과 자연을 끌어온 이 공간은 포도호텔의 ‘자연 친화’가 그대로 느껴진다.

가장 좋은 건 ‘대단할 것 없는’ 창밖 풍경이다. 하늘과 오름들을 광활하게 내려 보는 것도 아니고, 제주 바다를 볼 수도 없다. 그냥 눈 높이에서 보이는 풀과 낮은 돌담과 멀리 있는 오름의 능선과 그 사이 어디쯤 있는 나무들이다. 여행을 할 때마다 되도록 시야에 많이 담으려고 잘 보이는 곳, 높은 곳을 찾았지 눈높이에 보이는 풍경의 편안함을 잘 몰랐었다. 그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흔한 일상이 어쩌면 이타미준 선생에게는 평생의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결핍된 자만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일상’이기에 포도호텔이 작가 자신에게는 ‘기발함’ 보다는 ‘꿈꾸던’ 모습의 실현이었을 것이다. 제주의 자연은 그리움이자 꿈이었기에 그의 작품 속으로 되도록 많이 들여왔다.

 

 

클럽하우스와 핀크스골프장

 

클럽하우스

 

골프장과 포도호텔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 안개 깔린 골프장은 평화롭고 약간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골프장 곡선의 한 끝에 낮고 부드러운 호텔의 곡선이 이어진다. 클럽하우스는 두 곡선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상대적으로 클럽하우스는 각진 느낌이다. 한라산을 등지고 있는데 그 실루엣이 한라산을 닮았다. 이 또한 지평선을 거스르지 않았고, 지면에 파묻힌 듯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해가 질 때는 어떨까? 맑은 하늘 아래는 어떨까? 방주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곳 역시 새로운 발견을 줄 것이다. 무엇에 이끌리듯 다음 방문을 계획하며 짧은 여행을 마친다.


1페이지 / 현재 1페이지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