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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에 바람- 자연의 바람, 바람이 품은 푸른 생명력, 서귀포> 전시 소개◀

· 작성자 : 소암기념관      ·작성일 : 2020-12-02 09:47:28      ·조회수 : 2,765     

 

 서귀포시 공립미술관 공동기획전 <서귀포에 바람>

 소암기념관 : 자연의 바람 - 바람이 품은 푸른 생명력, 서귀포

 

  소암기념관

 2020. 11. 17(화) ~ 2021. 2. 28(일)

  현충언, 양상철, 고순철, 오민수


 

                      


 

우리나라 최남단, 바다 한 가운데 자리한 제주는 참으로 ‘바람의 섬’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바람막이 하나 없는 제주는 태풍의 길목에 자리 잡아 사시사철, 사방팔방에서 온갖 바람들이 드나드는 바람의 섬이다. 제주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어대는 거칠고 모진 바람에 순응하거나 때론 투쟁하면서 온갖 시련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움 틔었다.

제주 사람들에게 바람은 가장 큰 역경이자 매서운 고통이었으나 동시에 강한 생명력이기도 했다. 해마다 찾아오는 태풍과 일 년 내내 멈추지 않는 바닷바람은 제주 사람들을 늘 배고프게 하였다. 거센 바람과 파도는 가족과 고깃배들을 집어삼켰고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와 칼바람은 해녀들을 더욱 고되게 하였다. 허나 아무리 추워도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꽃을 피우는 동백처럼, 제주 사람들은 바람에 순응하거나 때론 투쟁하면서 강한 생명력으로 삶을 꾸려갔다. 제주의 초가는 강풍을 피해 지붕이 낮고 새로 줄을 꼬아 촘촘히 엮었으며 구멍 숭숭 뚫린 돌담과 대문을 대신 한 정낭으로 바람을 이겨냈다. 밭에는 바람에 씨앗이 날리지 않도록 마소를 이용하였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세게 말하고‘강, 왕, 봥’같이 언어를 축약하였다.

거친 바람과 만난 제주의 자연은 에너지 넘치는 생명력으로 예술가들의 온 감각을 일깨운다.

제주 사람들에게 바람은 견디기 힘든 존재였지만 그럼에도 바람은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형성시킨 원천이었다. 바람은 제주만의 이색적인 풍광을 만들었고 예술가들로 하여금 제주의 자연을 그릴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 이번 서귀포시 공립미술관 공동기획전 <서귀포에 바람- 자연의 바람, 바람이 품은 푸른 생명력, 서귀포>에 참여한 작가 4인은 모두 이곳 서귀포에서 나고 자랐다. 작가들은 서귀포 품 안에서 사계절 찾아오는 바람을 느끼고 파도 소리를 듣고 풀내음 맡으며 자랐기에 이들 작품 곳곳에는 서귀포 자연의 생명력이 녹아 있다.


현충언 작가는 매일 남원읍 수망리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로 출근한다. 울창한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 또 다른 세상과 같은 그 곳에 작가의 작업실이 있다. 작가는 항상 같은 시간 출근해서 검은 화지(畫紙) 앞에 앉는다. 그리고 오일파스텔로 점을 찍으며 작업을 시작한다. 작가는 단번에 점을 찍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하나의 점을 찍기까지 작가는 머릿속에 몇 번이고 나무를 그리고 숲을 그리고 또 그린다. 수백 번 되뇌고 자신을 끝없이 의심하며 고심한다. 작가가 이토록 끝 모를 고독의 시간을 거쳐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 작가가 찍은 점 하나가 자신이 30여 년 전 직접 씨앗을 줍고 싹을 틔워 손수 심고 가꾼 나무이자 숲이기 때문이진 않을까

작가는 자신을 ‘숲을 가꾸는 농부’라 한다. 땅에 씨앗을 심어 나무를 가꾸는 것처럼 작가는 화면에 생명 하나하나를 심어 울창한 숲을 완성시킨다. 작품 속 숲에는 나무 사이를 가르는 신선한 바람과 맑은 공기, 청명한 하늘이 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따스하고 밤하늘 은은한 달은 아늑하다. “자신이 숲을 가꾼 것이 아니라, 숲 그리고 나무가 자신을 보살폈다.”고 이야기 하는 작가는 진심을 다해 자연을 사랑하고, 이 마음이 고스란히 스며든 작품은 생명 가득한 숲을 이뤘다. 작가의 손끝은 매일 생명의 씨앗을 찍는다. 화폭 속 점들은 모이고 모여 나무가 되고, 나무는 마침내 충만한 생명의 기운을 이룬다.

    

(좌) 무서운 숲, 2020, 종이에 오일파스텔, 162.2x260.6cm / (우) 오래된 숲, 2018, 종이에 오일파스텔, 115x150cm


양상철 작가는 학창시절 소암 현중화(素菴 玄中和)선생에게 배운 것을 계기로 서예를 시작하였다. 작가는 전통서예가 대중과 점차 멀어지고 예술성까지 의심 받는 것을 바라보면서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변모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에 작가는 전통서예와 함께 20여 년 전부터 서예에 회화, 건축 등을 융·복합하여 서예에 현대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돌가루, 석고, 섬유, 쇠, 목재, 시멘트, 공업 물감 등을 재료로 선택하여 서예에 보는 맛을 더하였다. 작가의 작품에는 다양한 재료가 등장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필선(筆線)이다. 서예의 필획은 일회성이고 즉흥적이지만 찰나의 순간에도 작가의 성정(性情)이 고스란히 담긴다. 작가는 작품을 할 때, 자신이 제주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 한다고 한다.

제주의 예술은 풍토적이며, 제주의 역사는 바람과 싸워온 투쟁과 저항의 역사이다. 거센 모슬포의 바람으로 탄생한 추사체와 세상을 집어 삼킬 듯한 폭풍과 함께 한 변시지, 소암의 초서체는 제주 바람이 만든 예술이다. 작가의 작품 속 붓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스며있고 현대 서예를 위한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정신은 그에게 내재된 강인한 제주 정신의 발현이 아닐까. 전통 서예에서 작가만의 심미안으로 벼려낸 작품은 하나의 추상 작품이다.

                         

(좌) 영실기암(靈室奇巖), 2020, 목판에 먹, 아크릴, 63x88cm / (중) 문자(文字)의 방, 2012, 합판에 혼합재료, 120x120cm / (우) 변형(變形), 2020, 제주흙소성, 고목재, 60x20x20cm


고순철 작가는 서귀포의 자연을 그리는 서양화가이다. 대학교 때부터 화우(畵友)들과 야외 스케치를 다니면서 한라산과 오름, 섬, 바다 등 제주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바닷가에 자생하는 염생식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염생식물은 소금기 있는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염분 가득한 토양과 강한 바람, 뜨거운 햇빛은 보통의 식물이 살기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염생식물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작가는 우연히 바닷가를 걷다 염생식물을 보았을 것이다. 분명 그 이전, 서귀포 여느 바닷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염생식물이 지금에서야 작가의 눈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날 문득 부모님 얼굴에서 깊은 주름을 보았을 때, 우리는 너무도 익숙하기에 잊고 있었던 부모님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중년이 지난 작가에게 지금의 바다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바다가 아닌, 어머니의 공간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평생을 해녀로 살아오셨다. 작가는 거친 바람과 파도를 뚫고 자맥질하며 삶을 이어왔던 제주 해녀와 어머니의 강인한 생명력이 염생식물과 꼭 닮아 있다고 이야기 한다.

작가 작업실 한 쪽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진실한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라. 자연 속을 거닐며 자연이 주는 의미를 깨닫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메시지를 기억하라…”이글처럼 작가는 염생식물이 건네는 메시지를 이제야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염생괴석-춘, 하, 추, 동,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94x112cmx8ea

오민수 작가는 수묵으로 서귀포의 풍광을 그린다. 작가의 붓 끝에서 퍼져나간 산악과 수목, 오름, 섬, 바다 등 제주의 산수는 실경이 주는 아름다움을 넘어 자연에 대한 경외심까지 들게 한다. 서귀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는 육지에서 작업을 이어오다 6년 전 쯤 고향인 서귀포로 돌아왔다. 마음의 쉴 곳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작가는 산수를 그리고, 그림 속을 거닐고 노닐면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 산수를 유람하듯 작가의 작품을 눈으로 거닐다보면, 거친 붓 터치는 까슬한 바람이 되고, 하얀 여백은 하늘이 되었다가 섬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바다가 되기도 한다. 단숨에 줄기차게 그어진 짙은 먹은 ‘쏴아아’하는 장쾌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거대한 폭포수가 되기도 한다. 작품 속 생(生)의 기운이 가득한 자연의 모습은 작가가 바라본 제주 산수의 모습이자 영원하길 바라는 이상의 공간일 것이다.

최근에 작가는 전통 수묵과 영상을 접목시킨 작업을 하고 있다. 수묵으로 그린 섬과 바다, 폭포 등에 파도 소리,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소리,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결 등 소리와 움직임을 더해 생생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로 작품만으로 서귀포의 풍광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옛 선조들이 산수화를 보며 ‘와유’(누워서 유람한다는 뜻. 집에서 명승이나 고적을 그린 그림을 보며 즐김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했던 것처럼, 코로나19로 여행이 어려운 지금, 작가의 작품으로 현대판 와유를 즐겨 보는 건 어떨까.

           

(좌) 산수유람-정방폭포, 2020, 한지에 수묵, 183x244cmx4ea / (중) 산수유람-원앙폭포, 2020, LED TV, 1분 / (우) 산수유람-천지연폭포, 2020, LED TV, 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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