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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집, 서귀포 건축문화기행 7-8코스 목축과 건축

· 작성자 : 관광진흥과      ·작성일 : 2020-11-05 16:33:49      ·조회수 : 31     

중산간은 제주마의 고향이다. 바다도 산도 아닌 그 어디쯤, 오름으로 둘러싸인 평평한 지대에는 외로운 테우리와 말들이 살았다. 이제는 제주의 풍경이 된, 바람 많은 언덕과 말이 노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예술적 영감과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

 

 

풍광이 된 제주 말의 놀이터

서귀포 목축, 건축, 예술 기행

 

 

글, 사진 : 여행칼럼니스트 송세진

 

가시리 갑마장

 

 

외로운 작은 쉼터, 조랑말박물관

 

조랑말 박물관

 

제주 사람에게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 고려 때부터 몽골에 의해 시작된 말 사육은 처음부터 토박이들의 생계와는 큰 상관없는 일이었다. 몽골이 물러간 이후에는 조선왕조에 바치는 최고의 진상품, 바꿔 말하면 섬사람에겐 세금이 되었다. 그러니 민초들은 말의 존재를 과연 좋아했을까? 가끔 의문이 든다. 어쨌든 조선왕조 입장에서는 주요 특산물인지라 그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농사와 어업으로 살았고, 말들에게 중산간을 내 주었다. 제주의 행정구역은 이때 나뉘어진 모습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한라산을 중심으로 피자 자르듯 세로로 길쭉길쭉 하다. 이것은 마을 공동목장의 경계였다. 말들이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지 않게 잣성을 쌓았던 흔적이다. 이 잣성이 지금의 행정구역 나눔과 거의 흡사하다. 높은 지대에 쌓은 것을 상잣성이라 하여 말들이 한라산을 넘어가지 않게 하는 역할이었고, 중잣성 지역이 주요 말들의 생활터이자 경계였다. 중잣성의 흔적은 지금도 많이 남아있다. 낮은 지대의 하잣성은 농사를 짓느라 대부분 허물어져 잘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잣성은 말을 키우느라 시작된 일종의 건축구조물이다.

 

가시리 풍력단지에 있는 조랑말 박물관

 

가시리는 갑마를 키웠던 곳이다. ‘갑마’라 함은 진상품 중 최고 등급을 말한다. 이 동네에 있는 ‘갑마장길’은 바로 갑마를 키우는 목장길을 말한다. 그러니까 조랑말박물관이 위치하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기도 하다. 조랑말박물관은 가시리 마을공모를 통해 지어진 곳으로 최초의 ‘리립박물관’이다. 따라비오름, 큰사슴이오름, 번널오름, 멀리 영아리오름 사이. 바람이 많은 풍력단지이자 넓은 초지에 홀로 서 있다.

 

조랑말박물관 노출콘크리트, 열림과 닫힘

 

이곳에 올 때마다 느껴지는 건 외로움이다. 이웃한 건물 하나 없이 덩그러니, 가끔 말들이나 이 주변을 맴돈다. 오름을 닮았다고 하지만 외딴 섬처럼 보일 때도 있다. 사람들은 박물관의 전시물을 감상하기 보다는 이곳의 풍경을 즐긴다. 동그란 중정을 둔 노출 콘크리트 건물, 1층은 필로티 구조로 그늘을 만들어 말도 사람도 트인 공간으로 들어와 쉬어 갈 수 있게 하였다. 처음 조랑말 박물관에 왔을 때는 실내 공간이 너무 비좁게 느껴졌었다. 왜 공간을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설계했을까 싶었는데 말과 테우리에 주는 작은 휴식, 존재 자체의 역할을 생각하니 무얼 더 담을 필요가 있나 싶다. 굳이 관람이 아니더라도 지나는 이들에게 잠시 그늘이 되어주고, 전망대가 되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랑말 박물관

 

조랑말박물관에선 주변의 풍경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가운데 텅 빈 부분은 분화구를 표현하는데 이 안에 서서 눈을 들면 멀리 따라비오름의 능선과 그 위로 하늘이 보인다. 3층에 올라 가까이는 마사와 말들, 말을 타고 초원 산책을 떠나는 사람들, 갑마장길, 오른쪽으로 따라비오름, 왼쪽으로 큰사슴이오름, 그 사이의 평평한 초지, 이들과 제법 잘 어울리는 풍력발전기 등 일대를 360도 둘러본다. 그 옛날 말테우리는 매일매일 이런 풍경을 보았겠구나, 그러고 보니 나홀로 캠핑족의 전형이네, 맑은 날, 아름다운 날, 한가한 날은 더 외로웠겠다, 말을 탄다면 이곳에서 꼬닥꼬닥 노닐어 볼까…… 이런저런 감상은 풍광이 주는 덤이다.

 

 

포토갤러리 자연사랑미술관

 

자연사랑미술관_서재철 작가님

 

이름은 ‘미술관’이지만 그림은 없다. 그림 같은 풍경을 담은 사진이 가득하다. 폐교된 가시초등학교는 2004년 포토갤러리 자연사랑미술관으로 개관하였다. 서재철작가는 1972년부터 제주신문사와 제민일보사 등에서 제주의 모습, 제주의 생활을 담았고, 은퇴 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작가가 가진 자료가 워낙 방대하여 3~6개월에 한번씩 전시물을 바꾸고, 유물, 소장전 등 기획전을 열고 있다.

 

자연사랑미술관 제주의 옛 풍경

 

사진에 제목이 없다. 자연은 각자 보이는 대로 느끼는 것이라 사진의 주제를 감상자에게 맡긴다. 때문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 느껴지고 보여 진다. 서재철 작가님의 설명을 듣는다면 제주의 옛 모습들이 얼마나 소중한 자료인지 알 수 있다.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것 같지만 자연을 둘러싼 환경이 자꾸만 변하니 노란 물결의 유채꽃밭, 물강애왓, 만수된 한라산, 성산일출봉 풍경도 지금과 같지 않다.

 

자연사랑미술관_제주의 옛 모습

 

또 다른 공간에는 흑백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사진들은 조금 더 오래된 제주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일력을 뜯어 방을 도배한 모습, 장바구니를 던져두고 점쟁이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낙, 아이스케키 하나에 온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을 한 꼬마, 흙바닥과 나무 전봇대가 늘어선 초가집과 슬레이트 지붕의 마을 풍경 등은 옛날이야기 할머니를 만난 듯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자연사랑미술관_화산탄갤러리

 

다른 전시실에는 화산탄과 옛 가시초등학교의 모습 서재철 작가의 필름카메라들, 작업실, 소장품 등을 볼 수 있다. 한편에는 상당히 작품성 있는 사진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는 소소하고 재미있는 볼거리도 있고, 제주 자연과 화산활동을 이해하는 공간도 있다. 마치 초등학교 교과 과정처럼 전인격적인 미술관이랄까,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운이 좋아 서재철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다면 정말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김영갑 선생의 사진에는 시간이 담겨있다. 오름 사면의 빛에도 바람의 흔적에도 기다림과 염원이 느껴진다. 셔터의 움직임은 순간이지만 그 풍광을 만나기까지 수만 번의 연습과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무거운 슬라이드 필름 카메라와 장비들을 지고, 오름을 오르고, 좋은 장소를 찾고, 빛의 시간, 바람의 때, 구름의 움직임, 계절의 질감이 드라마틱한 만남을 이루는 어느 날의 어느 시, 그 지루한 시간들이 쌓여 한 장의 사진이 된다. 그 때문인지 김영갑작가의 사진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게 된다. 그 외로운 시간들을 상상하며 조금은 공감하며 마음이 차분해진다.

 

김영갑 작가의 작업실

 

김영갑작가는 제주를 사랑했고, 제주의 풍광을 사랑했고, 제주의 풍광을 아프게 사랑했다. 그의 제주앓이는 이곳 삼달초등학교에서 잠들었다. 그의 삶과 투병에 대한 이야기는 김영갑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투병 중에 폐교가 된 삼달초등학교에서 조금씩 갤러리를 만들며 생을 마감하고, 학교 마당 한쪽에 뿌려졌다. 전시관 앞 그 분이 계신 곳에는 작은 제단이 있다. 두모악의 늦은 오후는 붉은 빛이 느껴진다. 감 잎의 그림자는 오후의 강렬한 햇빛을 거르고 제단에 작은 빛만 내린다. 방문자가 미쳐 챙기지 못한 촛불과 꽃을 빛이 알아서 마련해 준다. 평생 빛을 찍으러 다니던 작가는 제단에 떨어지는 햇빛으로 ‘괜찮다, 괜찮다’ 하며 그 배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색하지만 감사의 인사가 그곳에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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