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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집, 서귀포 건축문화기행 3 - 3코스: 녹차밭 기행

· 작성자 : 관광진흥과      ·작성일 : 2020-09-08 17:19:00      ·조회수 : 112     

서광다원에 가면 차를 관람하고, 차를 체험하고, 차를 즐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단지 차 한잔이 아니라 풍경과 공간 속에 보내는 시간이 스리슬쩍 차와의 좋은 기억을 만든다. 이곳에 있는 4개의 건축물은 여행자를 차의 세계로 이끄는 숨은 조력자이다.

 

한 잔의 운치를 걸어보자

녹차밭 기행

 

글, 사진 : 여행칼럼니스트 송세진

 

흐린 날의 오설록

 

 

 

그냥 편한, 차 박물관

 

오설록 티뮤지엄

 

서광다원과 오설록 티뮤지엄, 결국 한번은 오게 된다. 지인이 ‘제주에 왔는데, 가볼 만한데 어디 없냐?’ 고 물어본다면, 마침 서쪽 안덕면 즈음에 있다고 한다면, 게다가 상대방의 취향을 잘 모른다면 별 생각없이 추천하는 곳이다. 그만큼 무난하고 실패할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저런 이유로 꽤 여러 번 다녀왔다. ‘그래서 뭐가 좋은데?’ 라고 물어본다면 또 별 생각없이 ‘그냥 편해.’ 라고 답할 것이다. 이렇게 ‘별 생각없는’ 장소여서 인지 여행 중 ‘미션 클리어’ 할 필요도 없고 말 그대로 ‘편한’ 곳이다.

 

오설록 찻잔

 

이곳은 차가 가진 매력을 닮았다. 차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 하기 보다는 함께 하는 시간, 사람과의 대화를 도와준다. 마찬가지로 오설록 티뮤지엄도 특별한 주장이 없다. 진지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으며 무얼 단정하지도 않는다. 박물관이지만 카페이고, 체험공간이면서 포토존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차를 만나고, 편안한 휴식, 잔잔한 재미를 느낀다.

 

오설록 티뮤지엄의 둥근 디자인

 

오설록 티뮤지엄은 방문자를 의도한대로 이끄는, 약간은 미로 같기도 하다. 앞에서 보면 각이 팍팍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둥글게 돌아가는 구조가 입구의 인상과는 다르다. 정원을 품고 있는 반원의 형태로 현대적인 이미지와 전통의 멋, 제주의 자연을 담았다. 입구의 오른쪽은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의 현무암, 반대편은 목재의 격자가 조화를 이루고, 이끌리듯 들어가는 전시공간에는 세계의 찻잔, 조선시대 유물 등이 있어 차문화의 발달사를 볼 수 있다. 전시물 중에는 처음 이곳에 차 밭을 일구고 첫 수확한 차로 만든 제품이 있는데, 그때가 1980년이라 하니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제주가 차나무를 키우기 좋은 기후지만 돌이 많은 땅을 일구느라 수고와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차의 역사에 관심이 없다면 그냥 스치듯 통과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오설록 전망대

 

이곳은 공부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 즐기는 곳이다. 통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복도와 창을 통해 보이는 중정이 자연스럽게 발길을 카페 쪽으로 이끌고, 어느새 다시 바깥으로 나오게 되는데, ‘뭐가 지나갔지?’ 하는 사이 곶자왈과 마주하게 된다. ‘전망대가 어디 있었는데?’ 뒤늦게 기억이 났다면 후진을 해야 한다. 발품을 줄이려면 전시관으로 시작되는 ‘일방통행길’에 들어서기 전에 화장실 앞으로 올라가는 전망대부터 보고 오는 게 좋겠다. 사실은 전망대에서 보는 차밭 풍경이 아주 근사하다.

 

 

 

검은 돌과 흰 나무

 

티스톤

 

오설록 티뮤지엄에서 나오면 검고 네모 반듯한 건물이 숲에 푹 둘러싸여있다. 이름은 ‘티스톤’, 티(tea) 그리고 스톤(stone)이다. 차는 알겠는데 왜 돌이 나오지? 스톤이라는 게 벼루를 뜻한다. 조민석 건축가가 추사 김정희의 벼루를 모티브로 설계하였다고 한다. 제주 차 문화에 빼 놓을 수 없는 이름, 추사 김정희가 여기 또 등장한다. 추사 선생은 제주에 유배 와 있는 동안 추사체를 완성하였는데 벼루 10개를 밑창 내고 붓 1,000자루를 썼다고 한다. 위리안치 유배생활 중에 유일한 기호가 ‘차’였으니 그가 차로부터 얻었을 위로가 어땠을 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차벗이었던 초의선사가 제주에 와서 차 나무를 심어주었고, 그들로부터 차 문화가 제주에 들어왔기 때문에 지금의 ‘제주 녹차’가 있는 것 아닐까?

 

티스톤의 검은 유치창문

 

설계자는 ‘티스톤’울 통해 추사 선생을 기리고자 했다. 이곳에서 티클래스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체험 공간에서 보는 바깥 풍경이 상당히 아늑하다. 숲 속에 안겨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볼 때는 검정색의 다양함이 재미있다. 유리의 검정, 돌의 검정, 나무의 검정이 빛에 따라 달리 보이고, 매년 울창해지는 초록과의 대비가 세련된 조화를 이룬다. 이니스프리하우스 쪽으로 향하는 짧은 길은 숲의 요정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난대림이 우거져 있다. 생각해보면 자동차길로부터 1분 거리에서 곶자왈 분위기를 만끽하니 게으른 여행자들에게 최적의 코스가 아닐까 싶다.

 

이니스프리 하우스

 

티스톤이 돌이라면 이니스프리하우스는 나무이다. 제주 돌담벽 위로 너와 지붕을 올렸다. 티스톤이 싸여있는 느낌이라면 이니스프리하우스는 개방감이 있다. 티스톤이 검정이라면 이곳은 흰색이다. ‘아이고, 좀 앉았다 가자.’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창문을 바라보며 멍하니 잔디밭과 저 멀리 녹차밭까지 초록을 즐긴다. 카페에서는 제주를 담은 개성있는 스낵과 차롱 도시락 같은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차를 마셔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미 차로부터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만끽하고 있으니 말이다.

 

 

 

색이 좋은 차밭과 설록차연구소

 

서광다원

 

서광다원은 차 색이 좋기로 유명하다. 가끔 사진을 찍어놓으면 반짝이는 초록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비가 보슬보슬 오는 날에는 쓸쓸하면서도 서정적인 운치가 있고, 뭉게 구름이 뜬 날에는 ‘착한 나라가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딱 떨어지는 그림책이 연상된다. 사람들은 차밭을 거닐며 좋은 추억을 담는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 한잔 합시다.’ 라는 말 속에는 시간을 나누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니 차 밭에서 보내는 시간도 ‘차 한잔’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설록차 연구소

 

차밭을 걷다보면 건물이 하나 있는데 설록차 연구소이다. 심플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가 난다. 외벽을 두른 멀바우 원목과 징크 재질의 지붕이 이국적이면서 빈티지한 느낌이다. 지붕의 모양은 제주 전통가옥을 닮았고, 지붕 위로 난 창문도 독특하다. 200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전공자들에게는 상당히 귀한 실물자료일 것이다. 보는 눈이 없으니 이 정도로 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은 접기로 한다.

 

서광다원에서 보이는 티뮤지엄

 

다시 눈을 들어 티뮤지엄 쪽을 바라본다. 멀리서 보니 주전자 손잡이만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 같다. 반대편을 멀리 보면 차밭 위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띄엄띄엄 상반신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한가하고 소소하다.

자극적이거나 특별하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오늘도 ‘그냥’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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