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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집, 서귀포 건축문화기행 1 -6코스:21세기 현대건축

· 작성자 : 관광진흥과      ·작성일 : 2020-08-03 11:03:29      ·조회수 : 598     

이번 여행지는 서귀포의 ‘21세기 현대건축이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벌써 20, 우리에게 현대는 무엇일까? 앞으로의 현대는 어떻게 될까?

집은 100년을 바라보고 짓는다는데 건축가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제와 내일을 담은 ‘현대’의 집

21세기 현대건축

글, 사진 : 여행칼럼니스트 송세진

 

 

 

 

"아름다운 유물이 될 제주월드컵경기장"

 

제주월드컵경기장

 

올해는 유난히 안개가 많다. 낮게 깔린 안개를 뚫고 도착하니, 제주월드컵경기장을 반 덮은 지붕이 해무 위에 둥둥 떠 있는 배 같기도, 낯선 비행물체 같기도 하다. 테우(뗏목)를 모티브로 했다는 검색 정보가 전혀 와 닿지 않았었는데, 안개가 피어오른 아침은 마침내 건축가의 영감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올레를, 늘어선 하르방의 도열 또한 범상치 않다.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지는 하르방들은 모양도 표정도 조금씩 다르다. 실제로 제주에 전해지는 전통 하르방들은 지역마다 특징이 다른데, 이를 잠시 맛보기 할 수 있는 기회다. 거 참, 건축기행은 해설에 따라 여행의 전후가 확실히 구별되니, 아는 척하기 좋아서 은근히 뿌듯하다.

경기장은 지상에서 14m 내려간 지하에 있다. 제주의 거센 바람을 피해 안온한 분화구 같은 곳에서 공을 찬다. 건물을 세우지않았고, 땅으로부터 빌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뚝 선그래서 그 자신을 과시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바람을 달래고, 땅에게 신세를 진 자연의 일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실제로 건축가는 한라산으부터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경기장을 두른 지붕과 기둥과 경간은 5대양 6대주를 상징하며 2002년 세계인을 품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공중전화부스

 

무관중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제주월드컵경기장, 예고없이 닥친 코로나19 때문이다. 관중석은 닫겨 있고, 경기장 바깥 트랙을 걷는 동네 사람들만 띠엄띠엄 보인다. 처음에는 수용인원이 42,256석이었지만 월드컵 이후에는 29,791명으로 좌석수를 줄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한 명도 그 안에 앉을 수가 없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우린 언택트 시대를 맞이했다.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외치던 응원과 구호는 이제 불가능 할 지도 모른다. 나란히 붙어 있는 의자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미 공중전화 부스였던 자리는 그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하여 21세기 초의 현대건축은 그 어떤 것보다 빠른 속도로 고대 유물이 되었다.

그렇다. 다시없을 대규모 건축물이다. 그런 생각들이 스치자 텅 빈 좌석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해외에서 보았던 그리스로마 극장이 생각났다. 건축물은 보는 시각에 따라 흉물이 될 수도, 유적이 될 수도 있다. 필요한 건 우리의 관점과 노력이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이 우리의 찬란했던 기억과 함께 가꾸고 보전되기를 바라며, 이곳을 홈그라운드로 쓰고 있는 제주유나이티드FC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제주컨벤션센터와 앵커호텔(부영호텔)"

 

유리조인트 공법의 제주컨벤션센터

 

제주컨벤션센터는 동그란 유리건물로 낮에는 하늘과 바다를 담고, 밤에는 행성이 내려않은 것처럼 반짝인다. 서귀포에서 가장 현대적인 냄새가 나는 곳, 그 스스로 ‘마, 여기가 국제도시 중문이다.’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국제회의와 전시를 위해 2003년에 개관하였고, 지금도 제주의 대규모 박람회와 권위있는 국제 회의가 열린다. 내부에서 보이는 바다전망이 기막힌데, 그 전망을 밖에서 지나는 사람과도 공유하려는 듯 유리 반영이 언제나 지금의 날씨를 말해준다. 이 건물은 그러니까 유리가 포인트다. 빛을 담고, 빛을 발한다. 유리조인트 공법이라는 게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건축기법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군더더기 없이 미니멀하고 그만큼 임팩트가 있다.  

 

앵커호텔이었던 부영호텔

 

이곳은 국내 유일 리조트형 컨벤션센터를 표방한다. 그렇다면 리조트도 있겠구나. 그렇다, 있다. 세트로 건립된 앵커호텔은 현재 부영호텔이 되었다. 앵커호텔 앞에 ‘까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 물의 집) 라는 모델하우스가 있었는데, 설계자가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이다. 2011년 타계한 레고레타의 유작으로 그 이름처럼 빛과 물을 집요하게 담아냈다. 가벽을 세워 들어오는 빛으로 건물의 깊이감을 느끼게 한다던가, 하루종일 달라지는 빛의 방향과 물의 반영을 이용하여 그 그림자가 마치 한 폭의 회화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 자체가 갤러리였다. 안타깝게도 2013년 철거되어 지금은 어렵게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옛모습이 궁금해 블로그를 뒤지다 소품에 압류표목, 흔히 말하는 ‘빨간 딱지’가 붙어있는 사진을 발견하고 속상한 마음이 울컥 들었다. 지금 ‘까사 델 아구아’가 있었다면 수많은 블로거와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의 성지가 되었을 것이다. 관광지마다 귀한 것들을 헐어내고, 포토존을 만드느라 조잡한 조형물을 세우는 어리석음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귀한 작품의 철거에 일조한 호텔 건물을 통해 레고레타의 건축철학과 기법을 살펴봐야 하니 이곳에선 마음이 꽤 복잡해진다.  

 

 

"평화의 여러 모습을 가진 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국제평화센터

 

복잡해진 마음은 이곳에서 정리하기로 한다. 제주국제평화센터, 2006년 개관하였고 말 그대로 평화를 담고 있다.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된 제주에 하나쯤 있어야 할 건물이기도 하다. 주상절리를 형상화 한 강화유리 지붕을 통해 제주의 빛이 들어오고, 건물 뒤편 베릿네오름의 이름을 따 내부에도 복합문화공간인 베릿내가 있다. 야외전시실에는 평화의 상징물들이 있는데, 베를린장벽을 이용한 프랑스 작품, 분단의 상징인 철근, 금강산과 DMZ등이 있다.

 

밀랍인형 전시

 

여행자들에게는 밀랍인형 전시로 유명한데, 한국을 중심으로 평화의 순간들이 실물 크기 밀납인형으로 재현되어 있다. 대체로 이런 전시물들은 시큰둥하게 들어갔다가 추억 소환과 함께 말이 많아지며 의외로 재미가 있다. 부모 세대가 유난히 ‘라떼’를 많이 소환하는 곳이기도 하다. 문화공간 ‘베릿내’는 지붕의 통창에서 떨어지는 빛을 그대로 받으며 허공에는 ‘평화’하면 빠질 수 없는 파란 비둘기가 둥둥 떠 있다. 이 밖에도 제주 4.3, 제주의 외교 등 평화의 섬 제주의 이야기들을 전시물로 확인할 수 있다. 입구로 나오다 코고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아저씨 한 분이 깊은 수면중이다. 이 또한 전시물이다. 코골이, 낮잠, 평안, 평화…… 그 ‘평화’라는 것이 너무 심각하지 않아 좋다.

내일을 알 수 없는 남북관계이지만 2018년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에 섰을 때 ‘몇 달 후면 북한 최고지도자가 한라산에 오겠구나.’ 기대도 했었다. 그 일이 성사되었다면 분명 이곳 제주국제평화센터도 서둘러 대청소를 하고, 그들을 맞이했을 것이다. 언젠가 꼭 그런 분주한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의 여행만큼은 ‘평화롭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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