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당미술관 협력전) 이중섭미술관 입주작가 결과보고전〈사이의 사이 〉
· 작성자 : 기당미술관 ·작성일 : 2026-10-16 16:38:16 ·조회수 : 126

《사이의 사이》
2026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우리는 흔히 ‘사이’를 두 대상을 가르는 거리나 경계로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 어제와 오늘 사이처럼 ‘사이’는 무언가를 나누기도 하고 잇기도 한다.
그러나 사이가 언제나 분명한 것은 아니다. 명확했던 것이 모호해지고 익숙했던 것이 낯설어지며, 그 사이에서 또 다른 사이가 생겨나기도 한다.
어느 한쪽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곳에는 서로 다른 감각과 생각이 함께 놓인다.
《사이의 사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이러한 여러 겹의 사이에 주목한다.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서 10개월을 보낸 이예슬, 신윤주, 정용국 작가는 각자의 경험과 시선으로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를 다시 바라본다.
세 작가는 그 과정에서 발견한 질문들을 작업으로 풀어내며, 명확함과 모호함, 이동과 정착, 보이는 것과 바라보는 것의 사이를 탐색한다.
이예슬 작가는 명료함과 모호함 사이에서 공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감정과 관계를 건축적 구조로 번역해 온 작가는 제주에서 마주한 비선형적인 길과 공간을 통해 익숙했던 질서와 해석이 흔들리는 순간을 경험한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모호해지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이 모호함을 해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간을 새롭게 읽어내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낯선 감각과 질문은 작업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둘 사이엔〉에서 작가는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형성된 제주의 길에 주목한다. 곧게 뻗지 않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에서 오랜 시간 쌓여 온 선택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수많은 결정과 결과가 모여 이루는 인간의 삶에 비추어 본다. 이전 작업에서 색채를 통해 개인의 감정과 분위기를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색을 덜어내고 무채색만을 사용해 길의 구조와 그 안에 새겨진 시간을 보다 명료하게 드러낸다.
또한 안과 밖을 구분하면서도 서로를 단절하지 않는 제주의 돌담은 작가가 인식해 온 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제주의 공간에서 발견한 경계의 모호함과 그 안에 축적된 삶의 흔적은 공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새로운 관점으로 이어진다.
신윤주 작가는 이동과 정착 사이에서 달라지는 감각과 인식에 주목한다.
작가에게 몸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머무는 장소이자 매개체이다.
제주로의 이주는 작가가 익숙했던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현재를 받아들이는 방식뿐 아니라 지나온 시간과 기억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작품에서 색채와 물감의 질감은 중요한 조형적 역할을 한다. 작가는 보라색이나 주황색처럼 중의적인 인상을 주는 색으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의 상태를 표현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연두색 형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을 암시하는 동시에 관람자의 시선을 이끌어 흩어진 장면들을 연결한다.
작업의 마지막에 두텁게 올린 물감은 천천히 흘러내려 화면에 시간의 흔적을 남긴다. 작가에게 그림은 지나간 경험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몸에 남은 기억과 감각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구성하는 기록이다.
정용국 작가는 보이는 것과 바라보는 것 사이에서 대상을 새롭게 해석한다. 눈앞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의 과정에 주목한다.
같은 대상도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고정된 시점에서 벗어나 시선을 옮기며 대상을 탐색하고
그 과정에서 포착한 여러 장면과 감각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낸다.
〈열두 바다 十二水圖〉에서 작가의 시선은 제주 바다를 향한다. 매일 마주하는 바다는 같은 자리에 있지만 바람과 날씨,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작가는 바다에서 마주한 변화를 먹과 물의 흔적으로 화면에 풀어낸다.
붓으로 그은 선과 종이에 스며든 먹이 어우러지며 바다의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마주하는 대상이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새롭게 발견되고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명료함 속에는 모호함이 깃들어 있고, 지나간 시간은 현재의 감각 속에 여전히 머물며,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세 작가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설명만으로는 담기 어려운 경험과 생각들을 만나게 된다.
《사이의 사이》를 통해 우리가 분명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잠시 멈추어 살펴보았으면 한다. 작품을 마주하는 시간이 익숙한 판단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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